태화스토리

태화복지재단과 함께하는 태화인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96년의 역사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태화 이야기

2017.04.06
조회수 255

 

96년의 역사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태화 이야기

 

 

 

 

CHAPTER 1. '터'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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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1939년의 태화여자관 모습/ 우) 현재의 태화복지재단 태화빌딩 모습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한복판에 세워진 태화복지재단

 

태화복지재단은 한국 최초로 설립된 사회복지 기관으로 전국 41개의 사회복지시설과 캄보디아, 라오스 태화지역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빌딩이 들어서기 전, 이 자리엔 무엇이 있었을까요?

 

이 곳에는 많은 역사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했던 요리집인 명월관(現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자리)의 분점 태화관이 이 자리에 있었고, 그 소유주는 잘 알려진 친일파 이완용이었습니다.

그러나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29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자, 이완용은 찝찝한 마음에 가게를 팔겠다고 내놓았습니다. 마침 이 때 남감리교 여선교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선교를 전개할 공간을 찾고 있던 중이었고, 이 곳을 매입해 '태화여자관'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CHAPTER 2. "1920년대 우리가 받았던 것을 이제는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전합니다."

 

태화여자관은 무엇을 하는 곳이었을까요?

 

태화여자관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당대 가장 소외받았던 여성과 아동을 위한 사회사업을 실시한 한국 최초의 사회복지 기관입니다. 열에 절반은 죽었던 아동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우유급식소 사업, 우량아 선발대회, 아동 위생을 위한 목욕탕 사업 등을 진행하였고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없었던 여성들을 위해서는 '웨슬레 구락부(Club)'사업, '재봉반' 사업 등을 펼쳤습니다.

 

현재 태화는 과거 태화여자관의 의미 있는 사업들을 가지고 캄보디아, 라오스로 그 지경을 넓혀 당대 우리가 받았던 소중한 사업들을 그 곳에서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유희장 사업 = 놀이터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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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1930년대의 태화여자관 무산아동운동장 모습/ 우) 캄보디아 바탐벙 태화지역복지센터 마당의 놀이터 모습

 

1920년대, 태화여자관은 첫 사업으로 유치원을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수업 때마다 유치원에 다닐 수 없던 가난한 아이들이 창틈으로 수업을 훔쳐보았고, 이를 마음 아프게 여긴 태화 선생들은 가난한 집 아이들 몇 명을 오전 수업에 참가시켰습니다. 하지만 '월사금' 내고 아이를 보낸 집 부모들이 "더러운 집 아이들과 같이 가르칠 수 없다"고 항의하였고 이에 차마 실내 교실로는 가난한 집 아이들을 들이지 못하여 넓은 마당을 교실 삼아 오후에 수업을 해주었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이 오전 수업을 받을 때, 거리의 가난한 아이들은 마당을 운동장 삼아 그네를 타고 시소를 타며 뛰어놀았고, 오후에는 공부를 할 수 있었지요.

 

우리는 당대의 유희장 사업을 캄보디아 바탐벙 태화지역복지센터에 재현해 놀이터를 지었고, 뛰어 놀 곳이 없던 지역 아이들 모두에게 신나는 놀이의 공간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재봉반 사업 = 재봉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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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1924년 태화여자관 재봉반 모습/ 우) 캄보디아 바탐벙 태화지역복지센터 재봉교실 수업 모습

 

1930년대, 태화여자관은 여성들이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구락부(Club)를 만들었습니다. 부인영어반, 음악구락부, 운동구락부, 재봉반 등이 있는데요, 현재 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여성들은 남편이 일을 나갔을 때 또는 본인이 퇴근한 이후에 구락부에 나와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 중 재봉반은 캄보디아 바탐벙 태화지역복지센터의 재봉반으로까지 이어져 캄보디아 여성들이 배움의 기회를 갖고, 나아가 배운 것을 활용해 취업하고 창업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웨슬레 구락부 = 아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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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1955년 웨슬레 구락부 수업 모습/ 우) 캄보디아 바탐벙 태화지역복지센터 아동교실 수업 모습

 

성신여대의 시초이기도 한  웨슬레 구락부는 나이, 가문, 성별 불문! 누구나 들어와 배울 수 있던 배움의 장입니다. 처음 시작은 초등 교육 적령기(약 13세)를 지난 여성들에게 초등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학생들은 중학교로 진학하거나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등학교 야간반에서 계속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전쟁통에 배울 기회를 놓친 여성들은 낮에는 애보기, 식모일, 바느질,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밤에는 웨슬레 구락부를 찾아 공부를 하였지요. 1959년에는 남녀 126명이 5개 반으로 나뉘어 공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웨슬레 구락부는 태화여학교로 발전, 1936년에는 성신여학교가 되어 지금의 성신여자대학교가 되기도 하였답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과거 한국의 여성들에게 삶의 용기와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던 웨슬레 구락부를 이어받아 우리는 캄보디아 바탐벙 태화지역복지센터에 아동교실을 만들었습니다. 취약 가정의 아이들이 크마에(캄보디아 언어), 수학, 영어, 컴퓨터 교육을 받는 등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지요.

 

 

 

96년의 역사가 들려주는 태화이야기, 재미있으셨나요?

 

96년이라는 세월은 흘렀어도, 소외된 이웃에 대한 태화의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것.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립할 힘을 가지고 자립할 때까지 곁에 있는 것. 그 것이 태화가 지향하는 가치이자 마음입니다.

 

태화복지재단은 100년을 향하여, 앞으로도 섬김과 나눔으로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