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스토리

태화복지재단과 함께하는 태화인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태화 95년, 가슴 뛰게 했던 기억들!

2016.03.24
조회수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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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한국 최초의 사회복지관인 ‘태화여자관’으로 시작한 태화복지재단.
95년이 지난 현재, 국내 40개 사회복지시설과 캄보디아·라오스까지 다양한 사업들을 확장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95년 전, 가난한 자를 돕는 손길이 턱없이 부족하던 한국 땅에 여성과 아동을 돕기 위해 세워진 태화여자관의 초기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창립 95주년을 맞이하여 태화의 설립이념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 이 이야기는 이덕주 목사님의 ‘태화이야기’,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의 역사’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


‘태화’라는 이름의 유래
조선 세조 임금 때, 능원부원군 구수영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집안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운 후 그 이름을 ‘태화정’이라 부른 것이 ‘태화’라는 이름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장안 제일의 요릿집 태화관(명월관 분점), 3.1운동의 발상지가 되다!
능원부원군의 집으로 부터 이후 권문세가들의 저택으로 이어져 내려오다, 구한 말 서울 제일의 요릿집인 ‘명월관’이 이곳에 세를 들어 ‘태화관’이란 이름으로 요릿집을 운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21년 , ‘태화관’(명월관 분점) 별유천지 6호실에서 민족대표 스물아홉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함으로 기미년 3.1 만세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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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이완용으로부터 태화관을 인수하다!
3.1 독립선언이 일어난 태화관의 실소유주는 친일파 이완용. ‘태화관’(명월관 분점)에 세를 주었던 이완용은 자기 소유의 집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곤혹스러워졌고, 때마침 사회선교를 전개할 공간을 찾고 있던 감리교에 헐값으로 태화관을 넘겨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최초의 사회복지사업이 ‘태화관’에서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첫 사회사업을 시작하다.
1921년 4월 4일(월) 태화여자관은 종교부(성경공부 등), 의약부(진찰소, 위생연구반 등), 영아부(탁아소), 사회부(재봉반, 요리반 등), 교육부(문학구락부), 도서부(종람실), 아동부(유희장) 7개의 부서로 나누어져 여성과 아동을 위한 사업들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의 종합사회복지관과 비교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다양한 사업들을 힘 있게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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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살려내는 일’
1920~30년대 한국은 유아 생존율이 50% 미만. 두 살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습니다. 1921년 태화여자관이 문을 열고 처음 시작한 일은, 바로 어린아이들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태화진찰소’라는 이름으로 1주일에 5회씩 어린아이들의 건강을 진단하고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또한 ‘우유급식소’를 운영하여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에게 영양소를 제공하여 죽어가는 아이를 ‘살려내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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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유희장’
태화가 첫 사업들을 시작하였을 때 인기 있었던 사업 중 하나가 ‘태화유치원’ 사업이었습니다. 조선 어머니들의 조기교육 열기로, 다른 사업들과는 달리 유치원 사업만큼은 흑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치원 수업이 시작되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월사금’을 낼 수 없었던 ‘거리의 아이들’이 담장 너머로 훔쳐보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마음 아파하던 태화 직원들은 가난한 집 아이들 몇 명을 받아 오전 수업에 참여시켰으나, ‘월사금’을 내고 아이를 보낸 부모님들의 반발로 이를 지속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거리의 아이들’을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태화는 태화관의 운동장을 개방하고 ‘거리의 아이들이’ 놀러와 마음껏 뛰어놀며 배울 수 있도록 유희장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200여명의 아이들이 유희장을 통해 노래와 유희를 즐기며 글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잣집 상류층 아이든, 버림받은 빈민촌 거리의 아이든 모두가 함께하는 배움과 놀이의 장을 태화가 마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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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던 일이 아니었던가?
이처럼 태화는 ‘거리의 사람들’이 들어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볼 수 있도록
그 문턱을 한껏 낮추려 애썼던 것이다."

 

이처럼 태화는 도움의 손길이 가장 필요하였던 한국 땅에서 최초로 사회복지사업을 시작한 한국 사회복지의 산 역사입니다.

그동안 태화는 9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국 사회복지 발전에 중심이 되어 다양한 실천에 앞장서왔습니다.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아이들을 되살리고, 부모에게 버려져 거리를 헤매던 아이들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배움의 장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95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경험하였던 희망의 기적들을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다시금 꽃피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국내외 소외된 이웃들과, 캄보디아·라오스 지역의 성장을 위해 태화는 계속하여 섬김과 나눔을 실천을 이어가겠습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태화 100년의 모습을 기대해주시고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글. 편집 / 최애리 사회복지사%uCD5C%uC560%uB9AC%20%uC0AC%uD68C%uBCF5%uC9C0%uC0AC.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