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스토리

태화복지재단과 함께하는 태화인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태화 기독교 사회복지 실천] 네번째 '태화의 성장과 좌절, 그리고 회복②'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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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직후 부산기독교사회관(現 부산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 영아반 단체사진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를 지난 후, 6.25전쟁으로 또다시 시련 속에 잠겨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태화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6.25전쟁 이후 피폐한 우리나라를 사회복지실천을 통해 회복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6.25전쟁으로 태화사회관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 후 복구 사업은 빌링스 관장 취임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빌링스는 당시 태화사회관을 차지하고 있던 미군 정보부대가 건물을 비워주기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태화는 1954년이 되서야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태화의 전쟁 후 사업은, 우선 전쟁 전 사업을 복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쟁 후 폐허가 된 사회를 치유하는 사업들로 이어져 새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 미국감리교회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선교비를 지급받아 태화는 빠른 기간 안에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전쟁 후 사업 복구 작업을 큰 무리 없이 마무리 지은 빌링스는 태화의 사업을 한국인 관장에게 맡기는 것으로 태화 역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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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태화 복구와 한국인 관장 시대를 연 태화사회관(現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6대 관장 페기빌링스(Peggy. Billings)

 

 한편, 이 시기 태화는 한국 감리교회와 선교부, 그리고 정부 당국과의 관계에서 위상 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 한국교회와 미국연합감리회 세계선교부와의 관계가 갈등을 빚게 되면서 ‘선교부 기관’으로 인식된 태화의 입장이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태화는 재단과 법인 설립으로 이 곤경을 극복하였습니다.
 
 1980년 11월 마침내 ‘사회복지법인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사업 유지재단(현재 명칭: 사회복지법인 감리회 태화복지재단)’이란 이름으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로부터 법인 등록 허가를 받았습니다. 법인 설립으로 태화는 다른 감리교 계통 사회관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한국 감리교회의 대표적인 사회복지실천 기관으로 정통성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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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감리회 태화복지재단은 기독교사회복지실천에 대한 내용을 연재합니다.

태화복지연구소에서 발간한 「태화 기독교사회복지실천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2014)」에서 발췌하여 요약·정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