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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복지재단과 함께하는 태화인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태화 기독교 사회복지 실천] 세번째 '태화의 성장과 좌절, 그리고 회복①'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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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 기독교 사회복지 실천] 세번째

'태화의 성장과 좌절, 그리고 회복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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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완성한 예배실 모습과, 현재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서울 강남구) 예배실 모습

 

 교회와 사회를 연결한 태화는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0년대 몇 가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남감리회, 미감리회, 북장로회의 3개 선교부 연합운영체제 변화입니다. 1936년 북장로회가 정식으로 태화에서 탈퇴했고, 미감리회도 1935년 로젠버거가 서울 연합 소아 건강 구제회 사업을 독립해 나간 후 태화에는 소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로써 태화는 남감리회의 단독 운영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대표적인 사업도 정비되었습니다. 태화여학교를 1936년 이숙종에게 인계하고 기혼여성 교육사업을 종결지었습니다. 이후 태화여학교는 지금의 성신여자대학교의 전신이 됩니다. 그리고 아동보건 및 공중위생사업이나 전도부인 사업도 축소되었고 대신 다양한 형태의 구락부 사업들이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사업의 정비와 확장으로 새로운 사업공간이 필요해졌습니다. 1939 3층짜리 현대식 건물을 갖은 어려움 끝에 마련했습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신축된 태화사회관(현재 태화빌딩 터)내에 예배실을 설치한 것입니다. 이는 태화사회관의 다양한 교육과 사회복지실천의 영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관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철저한 신앙적 자세를 가지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사회복지실천과 신앙을 연결시킴으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인류사회를 구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이를테면 예배실에 조심스럽게 새겨진 태극무늬는 일제강점기 말기, 말과 글 이름마저 빼앗긴 시기에 목숨을 걸고 새겨 넣은 것이었습니다. 현재 이 태극무늬는 태화의 상징 CI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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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완성된 태화사회관 모습과 예배실에 태극무늬로 장식한 천장 모습
 
 하지만 이 건물이 마련된 1939년은 일제강점기 말기우리 민족과 교회가 일제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던 시기여서 태화도 그러한 시련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결국 태화사회관을 운영하던 선교사들이 1940년 말에 강제 귀국당하였고, 1941년에 태화사회관은 적산으로 몰수당하여 종로 경찰서가 건물을 차지했습니다그 때문에 공식적인 태화 사업은 종결되었으나 당시 직원이던 김정선의 외로운 투쟁으로 태화 진찰소사업이 지속되어 태화 역사의 맥을 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새 관장으로 부임한 올리버는 종로 경찰서로부터 건물과 재산을 되찾는데 모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태화사회관은 주부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인형 사업을 실시하였고인천에 기독교사회관을 설립하는 등 태화 사역을 확산시켜 나갔습니다마침내 4년 만에 어렵사리 건물 전체를 반환받았습니다그러나 6.25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태화는 또다시 시련속에 잠기게됩니다.
 
                                                                                                                                                            

사회복지법인 감리회 태화복지재단은 기독교사회복지실천에 대한 내용을 연재합니다.

태화복지연구소에서 발간한 「태화 기독교사회복지실천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2014)」에서 발췌하여 요약·정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