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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 기독교 사회복지 실천] 두번째 '교회와 사회, 복음과 민족을 연결하는 태화'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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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 기독교 사회복지 실천] 두번째

'교회와 사회, 복음과 민족을 연결하는 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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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화진찰소의 어린이 건강검진 모습(1928년)

 

 3·1운동 직후 변화된 당시 사회생활 속에서 태화여자관(現 태화복지재단)이 출현했습니다. 태화여자관은 한국 감리교회 선교 초기부터 확인된 여성민족운동의 전통과 교회의 사회선교 전통을 계승한 ‘여성 전문 종합 사회선교기관’이었습니다.
 
 특히, 태화여자관은 협성여자성경학원의 교육 공간을 마련한다는 구체적인 동기도 내포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복음전도’의 전초 기지가 되었습니다. 이는 ‘복음전도’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대표적인 사역이었습니다.
 
 또한, 태화여자관은 기독교 기관이면서도 교회만이 아닌 그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를 사회에 두고 있었습니다. 즉, 사회를 ‘복음화’하는 것이 태화여자관의 설립 이념이요, 사업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태화여자관은 교회와 사회, 복음과 민족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그 임무를 수행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태화여자관의 사역은 일제 강점기 시대, 나라 잃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복지선교 활동이었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위기개입적 사역이었습니다. 1920년대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개척함으로써 지역사회로부터 주목받는 유명한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초창기 태화의 사업은 (1) 여성교육, (2) 복음전도, (3) 사회복지실천의 세 분야로 전개되었습니다. 특히, 사업 수행 방법은 집단사회복지실천(Group work), 개별사회복지실천(Case work)이었습니다. 태화 직원들이 지역사회 가정을 방문하여 개별적으로 각 가정의 위생과 생활개선, 서비스 대상자의 심리사회적 문제 해결 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개입은 당시로는 혁신이었습니다. 특히, 기혼여성 교육과 아동 보건과 공중위생사업은 일반사회에서도 시행하지 않았던 선구적인 사업들이었습니다.
 
 당시, 소외계층이었던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교회와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태화가 감당한 것입니다.
 
                                                                                                                                                            

사회복지법인 감리회 태화복지재단은 기독교사회복지실천에 대한 내용을 연재합니다.

태화복지연구소에서 발간한 「태화 기독교사회복지실천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2014)」에서 발췌하여 요약·정리 했습니다.